전후 일본에 있어서의 범죄의 변용
문학박사/해찬솔지식발전소장 김수성
고도성장기로부터 고도정보화사회에 이르는 시대, 그러한 시대의 변화(변용)와 범죄가 어떻게 상호 관계해 가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격동기였던 60년대 초의 시기에 범죄의 세계로 주목할 만한 징후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하나는 영아살인(嬰兒殺人)이다. 예를 들면, 패전직후 무렵, 갓 태어난 아이를 죽이는 범죄는 매우 빈번히 일어났다고 한다. 1948년에 일어난 건수가 대략 400여건인데 이것이 전후의 혼란기부터 안정기를 향해 감에 따라 점점 줄어들어 1958년 단계에서 140건이 되었다. 하지만, 11959년부터 또 상승으로 전환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생겨난다. 60년대에는 매년 180건에서 200건을 전후해서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코인라커(coin-locker)의 사건으로 연결된다.
종전직후에는 기본적으로는 생활고로 시달린 나머지 영아를 죽게 내버려뒀다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거기에서 경제는 복흥하게 되고 사회도 안정되어감에 따라 생활고가 범죄에 직결되는 국면은 거의 적어지게 되었음에 틀림없겠지만, 이제 드디어 경제의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되는 시대에 접어들자 느닷없이 증가한 것이다.
여기에 대한 이유 중 하나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시대 그 자체는 상대적으로 번영과 안정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그 변동에 의해 생활방식의 다양화가 생겨나와 특히 여성의 경우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의 의미가 조금씩 불안정해지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처럼 아이를 낳는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 모체인 여성 쪽에서 하나의 병리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 같다. 그러한 프로세스(process)가 고도경제성장의 개시 무렵에 시작되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60년대 초라는 것은 고도성장기가 시작되고 시대가 점점 안정을 찾는 가운데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라든지 생활의식에 지금까지 없었던 듯한 불안정 요인이 동시에 병행하여 양성되기 시작했던 시대였다고 생각된다.
또 한 가지, 60년대 초의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유괴살인, 특히 몸값을 요구하는 유괴가 매우 많이 발생하였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검거된 범인은 미수도 포함하고 있다고 보는데, 60년이 53명, 61년이 57명, 62년이 68명, 63년이 107명으로 「유괴 러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일어났다.
이것은 결국 사회의 대중화라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도 몸값을 요구한 유괴라는 것이 사회문제화되었던 것은 1920년에서 30년에 걸쳐서이며, 영화라든지 라디오의 보급으로 도시주민을 기반으로 하여 대중이라는 존재가 클로즈 업되었던 시기와도 대개 병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대중사회적인 현황이 본격화된 것은 역시 유괴사건이 많이 발생한 시대와 일치한다. 대중사회적 상황과 유괴사건 사이에 어떠한 인과의 도식을 그릴 수 있을 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중사회에는 사람들의 욕망이 자극받고 개발된다는 프로세스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과 상품화 경제가 생활의 전 국면을 뒤덮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한 시대의 경과가 인명에 가격을 매긴다고 할까, 부자들의 아들과 딸을 인질로 하여 그 몸값을 일방적으로 매겨서 이를 거래한다는 행동방식을 낳는 발판을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의 유괴사건의 경과를 간단하게 말하면 70년대에 들어서자 거의 줄어들고 후반이 되어 또한 증가경향을 띠게 된다. 80년대에 들어서서 다시 줄게 되는데, 그 대신에 80년대 전반에 나온 것이 바로 보험금 살인이다. 뭔지 모르게 보험금 살인과 몸값을 목적으로 한 유괴의 증가와 감소가 시소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유괴가 또한 증가하게 되는 것이 90년대 초인데 이것은 명확히 버블붕괴가 방아쇠가 된다. 그제까지의 유괴와는 좀 경향이 바뀌어 당사자가 능력이 있는 중소기업의 사장이라든지, 의사라든지 제법 사회적으로 부와 능력을 가진 자들이었다.이 무렵은 단독범은 적은데, 유괴하여 본인과 교섭하여 가족에게 돈을 가지고 나오게 하는 것이 매우 많았다. 토지에 쏟아 붓고 있었던 투기의 에너지가 사람의 신체로 전화한 것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현상이 사회전반에 드러났다.
1990년에 일어난 커다란 사건에 「日本閣殺人事件」이 있다. 이 사건의 범인은 전후 최초로 사형이 집행된 여성 사형수였다. 시오하라(塩原) 온천의 일본각이라는 여관의 경영자 부부가 살해된 사건인데, 당시 52세의 이 여성이 범행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을 보면, 역시 이 시대의 특질이 의외로 잘 드러나 있다.
그녀는 사이타마(埼玉)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행상으로 각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던 사람이다. 행상으로 돈을 벌어 그것을 저축하여 온천지에서 선물가게를 열었던 것이 1950년대 말이었다. 그 선물가게에 냇물이 흐르고 그 맞은 편에 일본각이라는 여관이 있었고 그곳의 주인과 사이좋게 지내게 되자 그 여관을 빼앗아버리려고 여러 사람들과 공모하여 살해했던 사건이다.
이것이 60년대라는 시대가 어느 측면을 방불케하는 것은 원래 욕망의 에너지라는 것일까, 살고자 하는 바이탤러티(vitality;활력, 생기)가 왕성하였던 여성이지만, 그것이 사업욕이라는 것과 결부되어 간다.
보통 탈취라는 것은 주식의 투기가라든지 금용시스템에 대한 지식과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 하는 것인데, 이 사람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생의 욕구의 대단한 바이탤러티가 그대로 ‘탈취’라는 것에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자신도 한번은 사업을 경영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불타올라 그 욕구가 상대의 생명을 태워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한 의미에서 경제의 발전이야말로, 생활의 가능성이 욕망의 영역을 넓혀간다는 시대의 예감임과 동시에 어딘가에서 결합되어 나타나는 범죄라는 생각이 든다. 고도경제성장기의 분위기를 매우 잘 상징하고 있는 사건은 아니까?
또 하나 1960년대의 범죄 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都市型犯罪」라는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도시형범죄라는 것일까, 엄밀한 개념규정은 아무것도 없는데, 인간관계에 얽매여 있다든지, 고유한 인간관계의 권내에서의 이해대립이라든지 애정이 얽혀있다는 특정 사람들에 관한 증오가 동기가 된다는 범죄패턴에서 이탈한 범죄라는 것에서 「都市型」과 상정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무렵 「이유없는 범죄(묻지마살인사건)」라는 말이 생겨났던 것도 도시형 범죄가 어느 측면을 확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동기와 목적이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범죄 그 자체가 목적화(目的化)되어 있는 듯한 양상이 있으며 범죄에 유희적 게임적인 부분이 어딘가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매우 새로운 형태의 범죄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불특정다수의 사람이 대상이 되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동기형성이 자기의식, 자의식에 매개되는 정도가 강해져서 범죄의 양상을 변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동기형성이 「자신이라는 것」의 대사회적인 의미의 불명확성, 불안정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라는 점에 강하게 매개된 범죄의 유형이 이 시기 많아졌다. 개념으로서의 「대중」은 하나의 집합표상을 이루고 있었던 것인데, 그 한사람 한사람에 있어서 보면 확실히 귀속되어있다는 느낌 등 그곳에서 얻는 것이 불가능한 고독한 채로 방출될 수 밖에 없는 「場」이라는 것이다. 대중사회라는 것은 그러한 「場」에 있어서의 개적인 감정, 자의식이 동기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이 무렵 나온 「도시형범죄」라는 것은 80년대 이후에 매우 많아진 현실과 망상(妄想)의 구별이 가지 않는 듯한 형태의 범죄라 생각된다.
범행의 수단으로는 폭탄사건과 총기사건이 눈에 띈다. 폭탄사건으로서는 「草加次郞事件」이라는 지하철을 폭파하거나 유명인에게 협박장을 보내거나 한 사건(미궁에 빠진 사건으로 시효소멸)이 있었고 橫須賀線爆破事件 등이 있었다. 총기를 사용한 범죄로서는 「永山則夫事件」과 「金嬉老事件」등이 일어난 것이 60년대이다. 70년에는 「瀨戶內シージャック」가 있고, 79년 「三菱銀行襲擊事件」. 이것도 유명한 사건이다. 이러한 사건이 표적이 된 것은 어디까지나 자의식에 대응한 불특정 인간, 군집, 대중이라 생각된다.
또 한 가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독물을 수단으로 한 것이 있다. 77년의 「靑酸コーラ事件」이 그 전형적인 예인데, 이 때에 「愉快犯」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쾌감이 동기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건을 통해서 볼 때 경제의 안정화는 외면적으로 생활방식의 다양성을 가져오지만, 개개인 생활의 심적, 내면적 측면의 불안정 요인을 해결해 주지 못한채 그것이 하나의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도출되어졌던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