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멸의 가치

by webmaster posted Jun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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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멸의 가치

 

해찬솔지식발전소장|

김수성|

 

 언제나 그러하듯 우리는 저녁에 눈을 감아 잠이 들면 분명히 아침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고, 또 내일이 온다는 식의 틀에 박힌 사고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하루하루를 느끼고 의식할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들숨과 날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호흡의 가치를 잊고 사는 날들이 더 많을 것이다. 들숨은 새로운 생명을 생성하고, 날숨은 새로운 생명이 다하고 남은 모든 찌꺼기를 체외로 배출해 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들숨을 ‘생(生)’이라 한다면 날숨은 ‘멸(滅)’인 것이다. 흔히 ‘멸(滅)’이라고 한다면, 아무 것도 없어져 모두 끝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 ‘멸’이라는 단계는 새로운 ‘생(生)’을 준비하는 단계인 것이다.

평소에 우리는 이 들숨과 날숨을 얼마나 느끼고 살고 있는가? 이 생멸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옛날에 어느 청년이 위대한 지식을 얻고자 소크라테스를 직접 찾아갔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위대한 스승이시여! 제게 당신의 지식을 전해 주세요!”

이 말을 듣은 소크라테스는 그를 데리고 강가로 갔다. 그리고는 그를 강물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그는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그 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물었다.

“그래 청년아, 지금 네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고!”

그러자 청년이 말하기를,

“공기입니다. 공기, 살려주세요.”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그래, 네게 가장 필요한 것이 공기인 것처럼 지식이 필요할 때 내게로 와라.”라고 대답해 주었다.

어떠한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너무 사랑하여 애정의 표시도 해주고, 매순간 많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지만 정녕 자기 자신에게는 어떤가? 자기 스스로를 아끼고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이 타 인을 배려하고 아낄 줄 알 것이다. 아주 작으면서도 큰 가치를 가진 들숨과 날숨의 조화를 잃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할 수가 없다. 호흡이 고른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또한 깊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창문 틈 사이로 비치는 햇살보다 신선하고 감사한 것이 어디 또 있을까?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따뜻한 한끼의 식사보다 더 값진 것이 어디 또 있을까? 내 삶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주어진 일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어디 또 있을까? 옷깃에 묻어나는 땀냄새보다 향기로운 것이 어디 또 있을까?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낸 동료에게 건네는 한잔의 커피보다도 더 따뜻한 것이 어디 또 있을까? 우리에게는 이처럼 힘이 되는 삶의 인자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를 들이쉬어 하나를 내쉬고, 둘을 받아 둘을 줄 수 있는 조화! 들이쉬기만 해도 내 쉬기만 해도 살아갈 수 없는 우리 평범함 속에 있는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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