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도 선진국민이니까...
해찬솔지식발전소|
연구총괄팀장 김동희|
한동안 온 나라가 천안함 이야기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지더니 어제의 선거문제로 이제 한 숨 돌리게 되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서 투표율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법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각 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해석이 달라질 것은 분명한 이치임에 틀림없다. 투표의 권리 행사자격을 얻은 지도 꽤 오래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내 기억으로는 일요일을 선거일로 정한 적이 없다. 만약 일요일에 투표를 해야 한다면,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공휴일을 하루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관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투표율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모두 자기 입장에서 생각한다. 어제도 투표권의 행사여부에 관계없이 가벼운 옷차림의 시민들이 여기 저기 많이 보였다. 아마도 짧은 휴식을 만끽하는 사람들이리라.
언제부터 우리는 주 5일 근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직장을 구할 때 연봉의 액수만큼이나 근무의 분위기를 중요하게 따지게 되었다. 그리 길지도 않은 대략 30년 전만하더라도 근무자의 휴일은 대화의 화제에 오르지도 못할 때였고,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먹는 문제가 당시의 제일 중요한 테마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88올림픽이 끝난 후 갑자기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생각과 행동들이 달라졌다. 1985년을 기점으로 외국 유학이 자율화되면서 젊은이들의 행동도 급속도로 서구화되었다. 그들은 자유를 만끽하며 기성세대들이 보고, 들은 전통적인 사고틀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여 왔다.
1978년 겨울, 부모를 잘 만나 돈 깨나 쓴다는 친구가 끌고 온 국내산 첫 자동차를 보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누구나 차 한 대씩 소유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다. 그만큼 경제력이 향상되었다는 점에선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궁상을 떠는 것처럼 보일까 매우 조심스러울 수도 있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요즘처럼 흔한 삼겹살은 꽤 고급 안주로 기억된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제력이 이처럼 커지고 생각이 서구화 되었을까. 아마도 신문과 매스컴에서 자주 우리나라의 경제력을 과대포장해서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소득이 얼마고, 경제 순위가 세계에서 몇 등이고 할 때마다 솔직히 조심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 수준이 수출순위에 합당한 선진 국민으로 착각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갑작스럽게 큰 돈을 만지게 되면 그 이전의 힘든 생활은 쉬 잊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로또에 당선되면 삶이 매우 긍정적으로 달라지고 매우 행복해 진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심심치 않게 소개되는 실패담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재산이 많아지면, 다른 말로 경제력이 커지게 되면 행동과 사고도 그에 걸맞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직은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질서와 약속, 나아가 정직과 같은 기본적인 예의문제에 소홀할 때가 많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아 보인다.
길을 다니다 보면 교통질서라는 것이 얼마나 나와 멀리 있는가를 느끼게 된다. 신호등, 횡단보도, 교통규칙...이런 것들이 절대적인 구속력을 갖지는 않지만 지키기로 약속한 서로의 약속체계임은 분명하다. 종종 밤길을 다닐 때에도 신호등의 존재가 무의미함을 느낄 때가 많다. 횡단보도의 경우도 차량이 우선이다. 면허시험에 나온 문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다. 분명 보행자가 우선이라고 배웠는데... 귀국 후 차량이 우선인줄 모르고 독일에서 하던 습관에 두 번이나 차량과 접촉한 적도 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른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한 탓일까? 제대로 정리 정돈을 하지 못한 것이 이유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갑자기 누리게 된 여러 가지 편한 생활에 아직은 제대로 적응할 여유가 없었나 보다. 아직 내 소유물을 마음대로 이용하느라 미쳐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내 주변을 돌아볼 차례다.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 할까를 생각할 차례다. 우리 이렇게 생각해 보자. 고속버스 안에서 옆에 앉은 승객이 담배를 피운다. 물론 나는 비흡연자이다. 이 상황을 참는다면 당신은 대단한 인내의 소유자이다. 두 번째, 누군가 마이크를 대고 내 귀에 핸드폰 벨을 여러 번 울리고 그리고 큰 소리로 통화를 한다고 상상해 보자. 이 상황도 견딜 수 있으면 당신은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쓸데없는 상상처럼 여겨지지만 위의 예는 단지 상상의 수위를 조금 높여 본 것이다. 이런 종류의 행동들이 우리 주위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벌어지고 있다. 단 내가 가해자인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씀씀이가 커지면 행동도 이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교양 없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서구사람들의 자유를 이야기 하면서 우리가 간과하는 중요한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그들의 사회와 단체에 대한 책임의식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의 개념은 즉,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함께 고려한다는 점이다. 자유와 사고, 책임의식 등의 개념은 실험이나 교과서에 수록된 과학과 유사한 개념이 아니다. 재화와 교환이 가능한 사고파는 개념도 아니다. 많이 갖는 것도 좋지만 이에 못지않게 어떤 것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갖느냐하는 점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관계되지 않은 일에 거의 무관심하다. 삼강오륜으로 배운 예의도 없다 한다. 젊은이들은 생각이 없다고 한다. 50대 이상 기성세대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구도 줄어든단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심히 우려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걱정은 그전에도 있었고 이미 3000년 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변하였지만 공동생활을 하는 우리 인간의 참 모습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책임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누구 하나만의 결과가 아니다. 나를 중심으로 이기적인 생각이 잠시 커지게 되었고 이는 순간적인 성장통이라고 생각하자. 이제 몸은 커져 비대해졌으니 다음은 머리 차례다. 허기를 면하면 의복과 외모에 신경을 쓴다고 했던가. 이제 우리가 그런 순서를 밟을 때가 되었다. 서두르지 말고 하나씩 해야 한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도 귀를 열어 보자. 다른 사람의 의견이 옳으면 좋은 의견이라고 칭찬도 해보자. 친한 친구와 심한 논쟁을 하고서도 그건 단지 너와 나 사이의 의견이 달랐을 뿐이라고 받아들이자. 사촌이 땅을 사면 문서용 봉투라도 선물하는 그런 아량을 배워보자.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계몽과 교육을 통해서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킨 좋은 경험이 있다. 질서와 약속 등의 사회적 규칙은 나부터 지켜야 한다. 이 사회에서 변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관리자에 의해 이전되었음] 무당벌레 | 2010.06.04 20:57